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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2021 트랜스해방전선 행사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IDAHOBIT) 맞이 공동행동] "우리가 여기 있다!" 릴레이 기자회견 발언문

1.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날씨가 참 좋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잠깐 서서,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가는 길이 바쁘시거든 오늘 어디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실 일이 있을 때 한 번 둘러보십시오. 성소수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 끝자리에 있을 수도 있고, 옆 자리에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마주보고 있는 일행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누가 성소수자인지 쉽게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진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걱정 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함께 있다고 건물이 무너진다거나, 지진이 난다거나, 내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던가 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각자 자기 일을 하는 성소수자들이 자기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몰랐을 때와 알게 되었을 때, 비성소수자의 삶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도 똑같이 밥을 먹고, 똑같이 커피를 마시고, 똑같이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튿날엔 똑같이 회사를 가고, 똑같이 취미생활을 하며, 똑같이 자기계발을 하고, 똑같이 미래를 그릴 것입니다.

그러니 성소수자들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 마찬가지로달라지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차별이라 부릅니다.

지난 2월,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변희수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간 훌륭한 인사 평가를 받으며 탱크를 몰던 직업군인입니다. 동료들과 사이도 좋았고, 따르는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그가 시스젠더 남성인지 트랜스젠더 여성인지, 이런 것들이 중요했겠습니까. 그저 변희수라는 사람의 둥글둥글한 성격과 군에 대한 애정, 군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들이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던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고 성별재지정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변희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그를 군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라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군에서 쫓겨나버렸습니다. 어제의 변희수와 오늘의 변희수가 다르지 않은데 그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꿈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변희수라는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강제 전역의 부당함을 밝히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 악플에서나 볼법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온갖 편견과 혐오가 대한민국 국군의 이름으로 법원에 제출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말하고, 국방부 스스로 만든 심신장애 기준에 트랜스젠더는 장애라 쓰여있으니 그건 장애라고 주장합니다. 재판이 아니라 말장난으로 고인을 능욕하는 수준입니다. 변론을 맡아 보는 법무관들이 우리가 낸 세금을 써서 트랜스젠더 국민들을 모욕합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해놓고 반성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이 기가막힌 넌센스를 끝내야 합니다. 변희수 하사가 재판에서 승리하여 강제전역이 부당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변희수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시민들께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십시오. 탄원운동에 동참해주시고, 주변에도 널리 알려주십시오. 함께 싸워 차별을 끝내고 내가 나로 살아가기로 결심해도 안전하고, 평온하며, 달라질 거 없는, 별 거 없지만 너무 어려운 이 벽을 함게 넘어갑시다.


 

2. 빌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비병리화를 넘어 포괄적 의료권을 위하여>

5/17일 아이다호 데이는 세계보건기구가 1990년에 ‘동성애’를 국제질병분류(ICD)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입니다. 그리고 2019년, 세계보건총회는 제11차 국제질병분류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병리화하던 ‘성주체성장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기로 하였습니다.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고 선포된 지 29년 만에 드디어 트랜스젠더도 존재만으로 질병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국제 표준 지식이 되었습니다. 이는 국제적으로 트랜스젠더 비병리화 운동을 펼쳐온 활동가들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이는 시작일 뿐, 이제 우리는 비병리화를 발판삼아 그 다음 숙제들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오늘 여기서 저는 많은 숙제 중 몇 개를 여러분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트랜스젠더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가 보편화되어야 합니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혹은 외과적 트랜지션을 원하지 않습니다만, 의료적 트랜지션을 원하는 경우라면 이는 개인의 생존과 지극히 연관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데 있어 아직까지도 성별을 중요시 하는 한국 사회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많은 트랜스젠더들은법적성별정정을 필요로 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의료적 트랜지션을 어느정도 진행을 한 개인에게만 법적 성별을 정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필수불가결의 조건으로 합의를 본 국가치고는 의료적 트랜지션의 벽은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호르몬 처방과 같이 그나마 진입장벽이 낮은 조치 마저도 그러합니다. 2020년 진행된 트랜스젠더혐오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호르몬 처방을 받고 있는 사람들 중에 60%가 처방을 위해 방문하는 의료기관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 편도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성기재건과 같은 외과적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어서 많은 경우 해외에서 관련 의료 서비스를 받고 와야 합니다. 트랜스젠더의 인권증진에 함께하는 의사가 몇 있다고는 하지만,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서비스를 이 몇 분의 호의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국가는 자국민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현 세대와 다음 세대의 의료진을 교육함에 있어 트랜지션에 관련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진행하여 국민이 필요한 의료적 서비스를 위해서 국경을 넘는 일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트랜스젠더 의료비용부담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같은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호르몬 요법을 받고 있지 않거나,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은 각각 51%, 71% 였습니다. 호르몬의 경우 주기적으로 투여해야 하고, 외과적 수술 같은 경우 수천만원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보험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미용목적으로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성별정정을 필요조건으로 만들어 놓고는 미용이라니, 한 입으로 두 말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별정정을 떠나서라도, 건강하고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단지 미용으로 치부하는 것은 국가가 트랜스젠더를 그냥 외적으로 변신하는 존재로만 단편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한국의 전국민 의료보험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그 명성에 걸맞게 트랜지션 관련 의료 지출 역시 포함하는 제도로 개선되어야 마땅합니다.

당연하게도 트랜지션 관련한 의료의 접근성을 보장한다고 해서 트랜스젠더의 의료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료계는 다양한 성별을 가진 사람들에게 친화적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법적 성별과 다른 성별로 활동하고 있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을 스스로 자정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의 병원 이용 관련 경험을 살펴보았을 때, 실태조사 참여자의 29%는 접수된 이름이나 성별이 맞는지 재차 확인을 받았고, 33%는 자신의 성별과 맞지 않는 입원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해야 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10명 중 1명은 모욕적인 발언이나 질문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의료종사자의 인권의식이 부족할 때, 가장 많이 다치는 것은 차별의 당사자입니다. 실제로 차별은 사람을 더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병원을 회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의료보험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지난 12개월 간 의료기관 방문이 필요했던 트랜스젠더 중 37%가 방문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미 더 아픈 이들이 병원을 덜 찾게 된다는 겁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노력과 특수성을 고려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의료기관에 성중립화장실을 비롯한 성중립공간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환자를 대함에 있어 차별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프로토콜을 마련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료와 처방에 필요한 것이 아닐 경우에 병원에서 굳이주민등록번호에 드러난 성별을 토대로 환자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는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노력입니다. 이와 함께,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적 트랜지션에 대한 연구, 호르몬제와 타 약물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와 같이 트랜스젠더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부분들에 대한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별 다양성에 대한 의료계 종사자의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이 시급합니다.

사실 여기 모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는 것을요.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주의에 갇혀 다양함을 마주하지 못한 의료계는 먼 길을 되돌아와서 우리가 맞았다고 합니다. 정체성을 보고 정신병이라 낙인을 찍은 역사를 참회할 생각이라면, 변화를 일구는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랍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의료계 종사자로서 목소리를 싣고, 이를 의료 현장에 적극 반영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11차 국제질병분류는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갑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는 2025년에 다음 개정판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통계청은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을 따라 ‘성주체성장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고, 정부는 이에 맞춰 트랜스젠더가 겪고있는 의료 사각지대에 대한 정책적 대책을 세우길 바랍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청년정의당 대표 강민진입니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에 떠밀려 트랜스젠더 동료 시민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회에서 정치의 책임을 통감합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직장 동료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20대 응답자의 73%, 30대 응답자의 52%가 동성결혼 법제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거나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논의의 장을 여는 작업을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국민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국회와 정부는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수도 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형사 처벌 대상으로 만드는 군형법상 추행죄는 여전히 법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고, 고 변희수 하사를 일터 밖으로 내몰았던 국방부의 트랜스젠더 군인 복무 금지 입장은 여전히 확고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첫 발의 후 1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성 정치권은 습관적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는 성소수자 시민을 평등하고 존엄하게 대우하는 정치입니다.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성별정정특별법 제정, 성소수자 혐오 행사 공공기관 대관 금지와 같은 일을 실현할 때 비로소 정치는 국민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습니다. 청년정의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로 성소수자 시민의 안전과 존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 김겨울 트랜스해방전선 대표

반갑습니다. 트랜스해방전선 대표 김겨울입니다.

국제 성소수자혐오 반대의 날이 돌아왔습니다. 지난해 아이다호 데이부터 올해까지 오는 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굳이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아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일하던 곳에서 쫓겨나고, 입학을 거부당하고, 채용에서 차별을 당하고. 그리고 이런 혐오들에 대해 대항하려 하면 이 혐오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강요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내온 길이었습니다. 그 사이 국회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으나 여전히 계류 중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법 시안을 내놓은 지도 1년이 되어 갑니다. 그사이 수도 없이 약속했던 민주당 발 차별금지법은 깜깜무소식입니다. 곧 발의한다는 언론에서의 인터뷰들이 무색하게도 발의에 대한 이야기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나중으로 미루고 또 미루어 15년이 미뤄진 차별금지법이 또 미뤄진 것입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제까지 국민적 합의가 먼저라는 허울뿐인 핑계로 논의를 미루고 차별에 고통받는 죽음을 외면할 것입니까? 먼저 나서서 합의를 만들어내고 국민을 설득해야할 정치권의 역할에 충실해 주십시오.

차별은 살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사회의 트랜스젠더는 의료비 폭탄과 과도한 성별정정 요건 그리고 취업난의 삼중고 악순환 속에 좌절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일자리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트랜지션 전후의 삶과 연결되지 못하는 현행 제도 속에서 트랜스젠더의 학력과 경력은 단절되어 불공평한 출발선으로부터 비롯된 빈곤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삶의 고난과 사회의 혐오속에 스스로 생을 놓아버리게 되는 비극을 이제는 멈출 때가 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에 어떤 차별도 있어선 안된다는 공동체 내 합의의 선언이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발점이 될 법입니다. 또한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 개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으며 결국 그 어떤 누구라도 약자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약자성은 다시 말해 다름이고 다름은 곧 다양성입니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차별받는 약자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 한국 사회 이제는 바꿉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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