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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 보고 · 성명 · 입장문/논평

[논평] 5. 대한민국 사법부의 시계바늘은 요지부동이다 - 2018. 08. 14, 서울서부지법 안 전 지사 무죄 선고 공판을 규탄하며 -

수행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겨례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1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진행된 안 전 지사의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의 내심이나 심리상태를 떠나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객관적인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전날 같은 법원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안모 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재판과 크게 대비된다. 두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자신이 겪은 고통을 호소했으나 각자에게 국가가 대답한 것은 달랐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안 전 지사가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으로 보아 그가 위력을 가졌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이 사건은 위력 등에 의한 성폭행으로 볼 수 없으며 (피해자인 김 전 비서는) 충분히 자기 결정권 행사가 가능했다"고 강조하며, “(성범죄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고 피해자의 성감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다”는 말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거부했다. 이는 한국의 기존 사법 체계가 규탄받아온 행각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에 불과하며 대한민국 사법부가 "MeToo"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다는 걸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판결은 이미 성폭력을 저질렀거나 저지르려고 숨 죽이고 있는 (잠재) 가해자들에게 격려의 손뼉을 치고 있는 셈이다. 아직 "우리 처벌 체계 아래에서는" 이런 정도로는 성폭력범으로 확정할 수 없다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 판결로 성폭력을 당했거나 당할 위기에 상시 놓여 있는 (잠재) 피해자들 앞에 거대한 성벽을 세웠다. "Time's Up Now"를 외치지 말라고.

작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낮다는 지적에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이러한 우려의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여 사법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고 밝힌 바 있다. 약 일 년이 흐른 지금, 구체적인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법부는 지난 시간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되묻고 싶다. 4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한 청와대 국민 청원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을 기억하라. 또, 혜화역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수많은 외침을 명심하라.

2018. 08. 14.

트랜스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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