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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2021 외부행사참석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자회견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자회견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에서 류세아 부대표가 발언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영상 15:40-21:10) https://www.facebook.com/lgbtactkr/videos/799314337345983/?app=fbl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노란 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

전철을 자주 이용하는 분들께서는 익숙한 멘트죠.

혐오는 예고도 없이 찾아와 일상을 무너뜨리곤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미디어에서도 모자라 교과서에서도 정치인의 입, 정당의 입장, 정부부처에서마저도 트랜스젠더도 사람이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잊은 듯한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옵니다.

사람이 다칠까 봐, 문이 닫힌다고 미리 알려주는 엘리베이터 기계음만도 못한 나라에서 기어이 살아내고 있는 모든 분께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얼마나 힘든 2월을 또 3월을 보내셨나요.

선거철이 되고, 도저히 신뢰하기 힘든 후보들의 약속이 난무하는 틈바구니에서 또 얼마나 공허한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하나, 둘.. 다섯 여섯, 그리고 수없이 많이.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부르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재개발 재건축 공약이 구원의 약속인 양 떠드는 후보들의 귀에 피가 나도록 외치고 싶습니다.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트랜스젠더는 언제 일상을 다 무너뜨릴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이게 당신들이 선택받고 싶어서 애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람들의 현실이라고 말입니다.

 

틈만 나면 세상은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 드는데 왜 우리끼리도 서로의 내일을 볼 수 없을까 봐 안절부절못해야 할까요. 슬프다고 말하려는 순간에도 고민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몰라서. 어려워서. 지독하게 슬픈 와중에도 머리로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사건이 터지고 누군가는 죽어나가고 이제 이걸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지 그런 말을 하는 것조차 죄스러운지 도대체 미안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 애도와 분노가 제멋대로 엉켜서 숨 한 번 편하게 내쉴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똑바로 지켜보고 있는 한, 떠난 이들의 이름과 삶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한 세상은 뒷걸음질칠 수 없습니다. 지우려 들수록 우리는 더 굵은 글씨로 우리의 존재를 쓰고 말하고 외칠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먼저 별이 된 소중한 동지들의 부재는, 우리의 삶을 통해 더없이 강력한 존재가 됩니다.

 

부재도 존재의 증명이 될 수 있다는 것, 함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렇게 커다란 의미가 됩니다.

 

트랜스젠더는 멈추지 않습니다. 점잖게 굴다가 죽지 않고 전력을 기울여 난리를 쳐 살아남을 것입니다. 나와 내 친구들의 오늘을 지키는 사람들, 어둡고 좁고 긴 복도를 지나 기어이 평등한 세상의 문을 여는 사람들. 그게 바로 저이고 여러분입니다.

 

트랜스젠더는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자신에게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상투적으로 말하면 힘이 안 나니까 이렇게 해볼까요.

크게 소리 내 또는 조용히 입 모양으로라도 내뱉어봅시다.

나는 밥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나는 밥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여도 둘이고

둘만 모여도 모두가 됩니다.

 

끊임없이 모이고 손잡고 소리치고 안아주면서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동지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등한 오늘을 만들어갑시다.

 

우리가 있기에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힘을 얻는 분이 계신다면

똑같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 또한 당신이 있어서 힘을 얻습니다.

 

혼자라는 생각 말고

살고 싶다는 절박함 말고

부디, 오늘 점심 뭐 먹을지 고민할 만큼의 힘듦이 있기를.

 

국가와 정치는 혐오를 방관하지만 우리는 결코 혐오도 서로의 아픔도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가능성도 희망도 승리도 결국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봅시다.

트랜스젠더라는 말도

트랜스젠더 한 명 한 명의 존재도 끝끝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당당하고 찬란하게.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니 우리 더 선명해집시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고, 사실 지금 세상은 누구보다 트랜스젠더를 필요로 하니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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