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출판사 이프북스는 『근본없는 페미니즘』이라는 신간 저서의 출판과 이 책의 홍보를 위한 북토크쇼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책 『근본없는 페미니즘』 의 저자 중 다수는 그동안 지속적이고 주도적으로 온갖 트랜스 혐오로 점철된 게시물과 담론들을 온라인 상에서 유포해 왔으며, 트랜스젠더 및 게이 등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 혐오발언과 아웃팅으로 악명 높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성소수자의 존엄한 삶을 위협하고 페미니즘의 연대와 포용의 가치를 저해해왔으며, 혐오와 배제, 아웃팅 등 인권침해 행위를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당화해왔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혐오가 마치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라도 되는 양 전략적으로 혐오와 분리주의를 페미니즘의 명분으로 내세워왔고, 그동안 이들이 집단적으로 자행해왔던 악행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며, 고통 받아온 피해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의 집단적인 혐오와 배제와 조롱 앞에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로 인해 힘겨운 삶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또 다른 두려움과 좌절감을 경험해야 했다. 이프북스가 이 끔찍한 비극을 만들어낸 혐오 집단에게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출판을 허용하고 공론장에서의 발언권을 쥐어주는 것은, 그들의 혐오를 승인하고 묵인하며 공모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근본없는 페미니즘』의 출판을 결정한 이프북스는 공식적인 입장문에서 이러한 트랜스젠더 및 퀴어 혐오 집단인 워마드에 대한 비판이 ‘사상검증’ 내지는 ‘마녀사냥’에 불과하며, 이 책이 혐오 발화자라고 부당하게 낙인찍히고 공격받아온 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의 혐오발언의 이면에는 어떤 두려움과 요구가 있는 것이라는 식으로 자비롭게 선해해서 정당화 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이 남성들의 여성혐오적인 표현물에 반대하고 보이콧을 해 왔던 역사가 “사상검증”이나 “마녀사냥”이었는가? 대체 트랜스젠더 혐오발언에 어떤 “두려움”과 “요구”가 있다는 것인가? 트랜스젠더 혐오발언이 “소통의 시도"이며, 혐오에 대한 비판이 “포비아 몰이", “착한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나누는 것"이란 말인가? 여성운동이 그동안 탁현민의 저서를 비롯한 여성혐오적인 저서에 왜 분노해왔으며, 여성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고 재생산하는 표현물과 출판물들에 분노해왔는지를 정녕 ‘페미니즘 출판사’인 이프북스는 잊었단 말인가? 여성운동의 역사가 그동안 어째서 여성 혐오발언과 신상털이에 반대해왔는지를 정녕 알지 못한단 말인가?
자승자박의 논리에 빠진 이프북스는 점입가경으로 이러한 혐오 세력을 억압받는 여성 피해자로, 이들의 혐오를 비판하는 이들을 권력자로 뒤바꾸면서 이들의 성소수자 혐오에 명분과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혐오에 공모하고 있다. 마치 여성혐오 앞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침묵하고 방관해온 수많은 방관자들처럼, 이프북스 역시 『근본없는 페미니즘』의 몇몇 저자들의 트랜스 혐오를 정당화하고 승인함으로써 이들과 공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근본없는 페미니즘』의 저자들의 가치관을 비판하는 이유는 좋은 페미니즘과 나쁜 페미니즘을 가르기 위해서도,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해서도, 그들을 마녀사냥하여 낙인찍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것은 누군가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이자 주류 사회의 소수자 혐오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저열한 혐오발언과 아웃팅을 지속적으로 유통하는 행동들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이프북스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정체성 정치에 갇힌 채 교차성을 망각하고 특정 여성만을 옹호하는 이프북스의 트랜스혐오적 페미니즘을 규탄한다. 우리는 이프북스가 트랜스젠더 혐오 집단의 악행을 승인해줌으로써 이들과 공모하였음에 통탄을 금할 수 없으며, 페미니즘 출판사로서 책임을 지고 ‘트랜스 혐오’ 자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청한다. 나아가 이프북스가 트랜스젠더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혐오 세력에 대한 승인과 공모를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2018년 1월 25일
트랜스 인권모임 트랜스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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