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평 · 보고 · 성명 · 입장문/논평

[논평] 3. 만연한 단위 내 성폭력, 뻐아픈 성찰 없이는 ‘악순환’을 깰 수 없습니다.

활동영역에서 성노동 의제, 성소수자 의제를 부르짖던 모 활동가가 가정에서 내몰릴 위기에 처한 피해자에게 하루의 생존을 미끼로 성구매를 제의하고 또한 그에 대해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커플의 아름다운 출발을 약속하는 결혼식장에서도 광범위한 가해행위가 이뤄졌다는 것이 2018년 7월 10일 공론화되었다.

 

피해사건 후 ‘공론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자의 사과도 처벌도 없었던 것은 물론, 공론화 이후 울며 겨자먹기로 명확히 고발된 특정 사건에 대한 건에 대해서만 사과문을 작성했을 뿐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참다 못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기에 이르렀다.

 

위계와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전형적인’ 단위 내 성폭력에 환멸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약자이기 때문에,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먼저 공론화할 수 없었던 그 장면은 우리 사회 치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은 고사하고, 피해자가 공적 보호도 조력도 없이 홀로 사건을 대면하고 견디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조직 내 성폭력’은 피해사실 폭로 자체도 어렵지만 공론화 이후에도 피해자가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명예훼손과 무고 등으로 가해자에게 고소당해 민형사상 소송의 ‘가시밭길’을 걷는 것이 수순이다. 결국 조직에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나는’ 것이 수많은 성폭력 사건 대부분의 귀결인 것이다.

 

최근에도 노동자 연대 등에서 활동하였던 성폭력 생존자들이 조직 내 성폭력과 조직 차원의 2차 가해를 고발했고, SNS에선 재작년 #문단_내_성폭력을시작으로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영화계_내_성폭력 #학교_내_성폭력 등 분야마다 끝도 없는 조직 내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다. 권력과 위계의 약자인 이들이 고난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 공론화를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조직은 건재하고 가해자는 법적 소송으로 시간을 끌다 혐의없음이나 증거불충분으로 빠져나가며, 가해자가 자살이라도 하면, 피해자는 사회적 지원도 지지도 없이 몰아치는 비난을 오롯이 감당한다.

 

단위 내부에 만연한 성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단순히 몇몇 인식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범죄와 그 축소은폐가 반복되는 ‘구조와 문화’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 공동체적인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활동했던 활동가가 가지는 ‘권위주의적 인습’과 ‘성적 대상화’ 인식이 개혁되지 않으면 우리 내부 폭력의 굴레는 벗어나기 어렵다.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가부장제’와 ‘성별위계’에 내몰린 퀴어활동가들이 기존의 권력구조에 순응할 뿐 뼈아픈 반성과 변혁의 의지가 없다면 유사한 피해는 장소와 사람을 바꿔가며 반복될 뿐이다. 성희롱이 눈앞에서 일어나도 그것이 성폭력인지조차 알아채지 못하거나 별일 아닌 것, 사적인 것, 피해자가 좀 참으면 되는 것, 술 먹고 잠깐 실수인 ‘해프닝’으로 치부되고 조용히 넘어가길 암묵적, 조직적으로 강요받는다. 공고한 ‘연대’와 그 침묵의 카르텔은 피해자를 입막음하거나 낙인찍고 성범죄는 감춰진다.

 

크고 작은 성폭력을 방조하고 외면하는 조직적 분위기에 ‘우리 모두가 공모자’라는 뼈아픈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진짜 변화가 시작될 수 있고 성폭력의 진정한 근절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성범죄가 공론화되었을 때, 피해자가 ‘관리자’가 아니어도 가해자가 ‘적폐세력’이 아니어도 공히 피해는 인정받고 가해는 비난받는 조직인지 엄중히 돌아봐야 한다.

 

이번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가 그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피해자가 낙인찍히지 않고 조직 내에서 존중받으며 ‘살아남는’ 지속적 경험과 신뢰가 축적돼야 한다. 성폭력 가해자가 강력한 처벌과 비난을 받고 조직과 공직에서 퇴출되는 공적 경험 또한 쌓여야 한다.

 

긴 시간 감당했을 고통과 그냥 묻어야 하는지 수없이 망설였을 고뇌를 딛고 용기 내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한 생존자에게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이 사회는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동안 무수히 많은 조직 내 성범죄를 공론화했던 생존자에게도 깊은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도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더 많은 생존자에게 트랜스해방전선은 굳건한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당했음에도 ‘명예롭게’ 활동판에서 활동하고, 여성을 모멸적으로 표현한 책을 여러 권 발간한 청와대 행정관이 제지 없이 공직을 수행하는 이 ‘구조와 문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는 결코 성차별과 성범죄는 근절될 수 없다. 한 사람의 존엄한 용기와 지금의 전 사회적 공분이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커다란 전환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2018.07.11
트랜스해방전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freetransright/posts/240665126731192

트위터: https://twitter.com/freetransright/status/1016710646765838336